최창식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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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창식은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광복 당시 일본 육군 대위로 복무했으며, 대한민국 육군 창설에 참여하여 육군 소령, 중령, 대령을 거쳐 육군 공병감을 역임한 군인이다. 한국 전쟁 발발 직후 한강 인도교 폭파의 책임을 지고 총살되었으나, 이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1974년 영화 《증언》에서 최불암이 최창식 역할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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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식 (군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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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이름 | 최창식 |
한자 표기 | 崔昌植 |
로마자 표기 | Choe Chang-sik |
별명 | 없음 |
출생 | 1921년 |
출생지 | 평안남도 평양부 |
사망 | 1950년9월 21일 (30세) |
사망지 | 부산시 |
묘소 | 없음 |
군 경력 | |
소속 | 대일본제국 육군 대한민국 육군 |
최종 계급 | 대위(일본 육군) 대령(한국 육군) |
복무 기간 | 1942년 ~ 1950년 9월 21일 |
지휘 | 대한민국 육군본부 공병감 |
제대 후 | 없음 |
2. 생애 및 활동
최창식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군인으로 활동했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8.15 광복 당시 일본군 대위였다.[1]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 육군에 합류하여 한국군 공병 창설에 기여했다.[1] 그러나 한국 전쟁 초기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의 책임을 지고 처형되었다.[1] 이후 박정희 정권 때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1]
2. 1. 일제강점기 군 복무
1942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56기 공병과를 졸업하였고, 8.15 광복 당시 일본 육군 대위였다.[1]2. 2. 대한민국 국군 창설 기여
1946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특2기로 대한민국 육군 대위로 임관하였고, 1948년 8월 육군사관학교 정훈 특 1기로 대한민국 육군 소령으로 임관(군번: 12318번)하여 한국군 공병 창설에 기여하였다.[1] 이후 육군 중령, 육군 대령으로 특진하였으며, 제1공병단장을 거쳐 같은 해 12월 대한민국 육군본부 공병감에 임명되었다.[1]2. 3. 한강 인도교 폭파와 처형
1950년 6월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의 책임을 지고, 같은 해 9월 21일 경상남도 부산에서 총살형을 당했다.[1]박정희 정권 때 재심이 진행되어, 1964년 10월 23일 재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1]
2. 4. 사후 재심과 무죄 판결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후 재심이 진행되어, 1964년 10월 23일 재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3.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1974년 영화 《증언》에서 배우 최불암이 최창식 공병감을 연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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